스푼, 포크로 세계 식탁 점령

유진크레베스

이제는 사양 산업이라며 모두 손을 털고 나올 때 그 회사는 ‘No'라며 새롭게 시작했다. 그 때부터 10년 후 그 회사에서 만든 스푼, 나이프, 포크는 세계 식탁을 점령했다. 사실 양식기는 저물어 가는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양식기라는 재료보다 중요한 건 요리법이었다. 한물간 아이템을 싱싱하게 살려 놓은 유진크레베스(주)(대표 문영기)의 요리 비법은 무엇일까.

전문기자 김미경 사진작가 박명래

요리 비법 1

흔하지만 좋은 재료, 양식기

결론부터 말하자. 유진크레베스에서 만드는 스푼, 포크, 나이프는 예사 양식기가 아니다. 쌍둥이 칼로 유명한 독일의 WMF, 백악관 식기 납품 회사인 미국의 레녹스, 스웨덴의 대표 기업 이케아 등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유명 주방용품 회사로 수출하는 글로벌 양식기다.

이뿐만이 아니다.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의 기내식 서비스 때 제공되는 스푼과 포크도 유진크레베스 제품이다. 유럽이나 미국 유명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때도 식탁에 올려 있는 나이프나 포크 역시 십중팔구 유진크레베스 것이라 보면 된다.

비록 자체 브랜드를 달고 있지는 않지만 유진크레베스에서 직접 디자인하고, 개발하고, 생산하는 ODM 제품이기에 자부심이 대단하다. 양식기 중에서도 특히 커틀러리(Cutlery 스푼, 포크, 나이프를 총칭하는 말)를 담당하는 바이어는 바이어들 사이에서도 혀를 내두를 만큼 까다롭고, 무섭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들이 유진크레베스 제품만을 찾는 것만 봐도 그 명성과 입지를 짐작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유진크레베스의 스푼과 포크, 나이프는 국내 시장에서는 구경할 수 없다. 100% 수출하기 때문이다. 설혹 국내에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유럽이나 미국으로 수출됐다가 역수입된 것이다. 연 8천만 개, 금액으로는 300억 원어치의 커틀러리를 생산해 독일, 영국, 네덜란드, 미국 등으로 나가 세계인의 식탁을 떡 하니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커틀러리 업계에 유진크레베스라는 이름이 정상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상은커녕 커틀러리를 생산하는 업체가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한 1996년에 문을 연 신생 업체였다. 사양 산업이라며 모두 떠나는 마당에 새롭게 뛰어든 것은 무모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문영기 사장에게 던졌다.

“사양 산업이라고 낙인 찍혔지만 아이템 자체에 메리트가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손으로 먹지 않는 이상 반드시 필요한 것이 스푼과 포크잖아요. 또 식생활 패턴도 많이 변해 동양인도 포크와 나이프를 많이 사용하고, 손으로 먹던 민족도 점차 포크를 쓰기 때문에 시장이 오히려 점점 더 커진다고 판단했죠. 서양인들도 커틀러리를 교체하는 주기가 짧아졌고요. 수요 면에서 따져볼 때 굉장히 안정적인 제품이었죠. 남들이 손을 털고 나간다는 사실에 더 구미가 당겼어요. 그만큼 경쟁자가 줄어든 거잖아요.”    

요리 비법 2

보기 좋은 떡이 맛있는 법, 디자인에 승부

사업을 벌여놓고 2년 동안은 준비운동하는 셈 치고 세계 여러 나라를 기웃거리며 관련 정보를 샅샅이 모았다. 그 결과 커틀러리의 생명은 디자인과 금형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제품 특성상 서양인들이 주요 고객인지라 그곳의 식탁 문화를 꼼꼼하게 조사한 것이 유진크레베스가 처음으로 한 일이다. 

우리네 식탁에서도 귀한 손님이 오면 꼭꼭 숨겨 놓았던 은수저를 깨끗이 닦아 밥상에 가지런히 놓듯 서양인들 역시 커틀러리에 대한 생각이 남달랐다. 아니 우리보다 한 수 위다. 어떤 커틀러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식탁의 품격을 가늠한다고 한다. 특히 유럽에서는 집안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것을 사용하거나 가문의 문장을 새기는 등 집안의 격식을 표현하는 한 부분으로 사용될 만큼 소중하게 생각한다. 아무리 근사한 요리를 준비해도 커틀러리를 용도에 맞지 않게 놓았다거나 짝이 맞지 않거나 흠집이 있다거나 휘어졌다거나 깨끗하지 않으면 초대받은 사람이 불쾌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맛없는 음식은 용서해도 허술한 커틀러리는 용서하지 못한다는 게 그들의 식탁 문화라는 점을 백분 활용한 것이 바로 유진크레베스다.

고급스럽고 세련되며 쉽게 흠이 나지 않으며 귀하게 여겨지는 커틀러리로 승부하기로 했다. 세계 시장에 나와 있는 기존 한국 제품이 대중적이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전략이었다. 다소 비싸더라도 부가가치가 높은 고급형 커틀러리를 만들기로 한 유진크레베스는 그 전략을 성공시킬 요소로 디자인이라는 카드를 빼들었다.

어떤 제품이나 손쉽게 탄생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커틀러리에 디자인을 입힌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손으로 잡고 입으로 옮기는 도구이기에 디자인에 앞서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청결과 안전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디자인이 잘 빠지면 입이나 손에 불편하고, 사용하기에 편하면 겉모양이 그저 그렇게 되다 보니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중소기업임에도 15명에 이르는 디자이너를 두고 있으니 유진크레베스가 디자인에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고, 디자인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알 수 있다.

매년 미국과 독일에서 세계 유명 전시회가 열릴 때면 유진크레베스가 어떤 디자인을 내놓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까다롭기로 소문난 커틀러리 바이어들이 유진크레베스 부스로 몰려든다고 하니 디자인이라는 카드는 제대로 먹혀든 셈이다. ODM 기업이지만 바이어들이 유진크레베스에 디자인 개발을 일임하는가 하면 샘플로 제시한 디자인을 100% 만족해하고 수용할 정도다.

유럽 사람들은 바로크 스타일과 섬세한 문양의 커틀러리를 좋아하고, 미국 사람들은 심플하면서 모던한 스타일을 좋아한다, 또 유럽인들의 손은 동양인과 비슷해 작은 크기를 편안해하고, 미국인들은 유럽인에 비해 손이 커서 잡았을 때 안정감을 줄 만큼 적당한 무게를 줘야 한다는 점 등 소비자들의 선호도를 꼼꼼하게 조사한 것도 도움을 많이 준다.

요리 비법 3

맛은 요리법이 좌우, 수작업이 핵심 소스 

같은 재료로 요리해도 만드는 사람의 조리 방법에 따라 천차만별의 맛이 나듯 커틀러리 역시 같은 소재, 비슷한 문양이라 해도 손에 잡는 순간, 입에 넣는 순간 느끼는 그 맛이 각양각색이라고 한다. 소믈리에들이 한순간에 와인의 모든 것을 잡아내는 것처럼 커틀러리 바이어들도 스푼, 포크, 나이프를 딱 들어보면 편안한 중량감인지, 정확한 좌우대칭인지, 제대로 연마됐는지, 열처리는 정교하게 됐는지, 입에 착 감기는 촉감인지, 나이프의 톱니 길이는 용도에 맞게 정확한지 등 수십 가지 요소를 모두 꿰뚫는다. 그만큼 바이어가 예리하다는 의미인 동시에 제대로 된 완벽한 커틀러리가 만들어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요인을 요구하는지  알려주는 부분이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의 유명 주방기업과 세계 유명 외식업체, 항공 회사에서 유진크레베스 제품을 사용하는 것은 이런 점들을 완벽하게 갖추었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연 40% 이상 성장하며 2001년에 110억 원, 2003년에 170억 원, 2005년에 240억 원어치를 해외시장으로 수출하는 글로벌 커틀러리가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유진크레베스가 이 같은 품질을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기계가 아닌 사람이 일일이 손을 보는 수작업에 있었다.

“커틀러리는 자동화 공정과 수작업 두 가지가 모두 가능한 아이템이에요. 기계에 의존하면 대량생산은 할 수 있지만 정교함이 떨어지기 쉬운 반면, 수작업은 대량으로 만들지는 못하지만 연마나 금형 부문에서 기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세밀함이 뛰어나죠. 저희는 처음부터 고급화를 지향했기 때문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기술을 보유한 인력 관리도 매우 힘들지만 여러 생산 과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하루에 수십 개 안팎으로 만들어 내는 100% 소량 수작업 제품도 아니고 연 8천만 개를 만드는 수작업 제품이라니, 이런 일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직원 수 2,300여 명이라는 사실이 이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주는 대목이다. 유니크레베스는 양식기를 만드는 국내 기업 중 가장 먼저 베트남으로 공장을 이전한 곳이다. 1998년에 관리와 영업을 제외하고 모든 부서를 베트남으로 옮겼다. 수작업을 원칙으로 하다 보니 노동집약적일 수밖에 없는데, 국내는 인건비가 높아 손익계산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해외로 이전하기로 했는데, 문제는 직원들의 기술 수준이었다. 손재주 좋기로 소문난 한국 사람들을 뒤로하고 동남아에서 만든다고 하니 바이어들이 먼저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이런 고민도 1~2년 후엔 모두 사라졌다.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오는지 바이어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고, 만약 조금이라도 품질에 이상이 있으면 거래하는 곳이 모두 날아갈 것이란 사실이 품질에 더욱 공을 들이게 하는 요인이 됐다.

실제 문 사장은 직원들의 기술 향상에 사활을 걸었다. 처음에는 국내 기술자들을 데려다 교육하고, 함께 생산에 참여했으나 얼마 가지 않아 현지인들로 모두 채워질 만큼 금형, 열처리, 연마, 검수 기술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 현재 베트남의 커틀러리 관련 기술자들 중 유진크레베스의 현지 직원들이 스카우트 대상이라는 것만 봐도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직원들의 숙련도나 품질을 향상하기 위해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공장 가동률을 의도적으로 줄인 것도 수작업에 따른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다. 이런 노력을 기울인 결과 거래 업체 중 이케아는 유진크레베스의 품질관리를 높이 평가해 이제 자체 검사로만으로도 선적할 수 있을 정도다.

요리 비법 4

음식은 데커레이션도 한몫, 패키지와 이미지로 마무리

지금도 한 달에 절반 이상을 베트남에서 보내는 문 사장이 잊지 못하는 일이 있다. 베트남으로 이전한 후 처음에는 수작업 기술이 흡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않아 주문이 들어와도 모두 거절했다. 또 수작업으로 생산하는 제품이니만큼 그에 합당한 가격을 받아야 하는데 바이어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가격을 제시하면 두 말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렇다 보니 수십억 원이 투자된 공장이 가동되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이런 일이 2년가량 계속되자 직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문 사장 역시 고민과 스트레스가 쌓였으나 다행이 유진크레베스만이 갖는 제품력을 인정해 주는 바이어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해 오늘을 맞게 되었다. 그 무렵 심하게 흔들렸을 많은 직원이 자신의 판단을 끝까지 믿고 따라줘 그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때 제 판단이 잘못된 것 같아요. 해외시장의 생리를 잘 몰랐던 거죠. 해외 바이어들은 모든 직․간접 정보를 입수․검토한 후 가능성 있는 회사와 거래를 터서 직접 그 제품을 일단 한번 경험해 보죠. 그 후 한번 거래로 끝내거나 계속 유지하는 식이에요. 제품만 좋다면 거래조건은 얼마든지 추후에 협상할 수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제품에 자신이 있으면 다소 조건이 불리하더라도 처음에 거래를 트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에요.”

문 사장은 해외시장을 겨냥하는 중소기업들이 이런 점을 꼭 참고했으면 좋겠다며 자신도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거래했다면 여기까지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훨씬 더 단축할 수 있었을 거라고 말한다.

바이어들이 유진크레베스의 커틀러리를 높이 사는 또 하나의 요소는 정성스럽고, 고급스러운 포장이다. 입으로 가져가는 점을 감안해 위생과 안전에 초점을 맞춰 스푼, 포크, 나이프 등 제품 하나하나를 깔끔하게 포장하고, 서로 부딪쳐 흠집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일이 개별 패키지를 사용한다. 커틀러리 자체가 수량이 많이 나가는 제품이어서 이렇듯 하나씩 개별 포장을 해 선적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일이라고 하니 유진크레베스의 이런 패키지 방법이 바이어들의 환심을 산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는 만큼 현지 사회에도 적극 봉사하고 있다. 커틀러리 한 개를 생산할 때마다 1원씩을 적립해 매년 베트남 심장병 어린이를 돕고, 지역 봉사 활동에 참여해 베트남에서는 ‘천사 기업’으로 통한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유진크레베스의 이미지를 높여 줘 바이어들이 주저 없이 유진크레베스 제품을 집어 들게 한다. 장사를 하되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유진크레베스. 이런 철학이 있었기에 세계가 유진크레베스를 선택했으리라. 

숫자로 본 유진크레베스

300 억 원 스푼, 포크, 나이프를 생산하는 유진크레베스의 매출액. 매출액 100%를 독일, 영국, 네덜란드, 미국 등으로 수출해 거둬들였다. 쌍둥이 칼로 유명한 WMF, 레녹스, 이케아 등 세계 유명 주방용품 회사가 유진크레베스의 고객이다.

8000 만 개 유진크레베스는 스푼, 포크, 나이프 등의 커틀러리를 연 8천만 개 생산해 낸다. 더욱이 정교한 품질관리를 위해서 생산 공정의 상당 부분을 수작업으로 한다. 직원이 2,300여 명에 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 원 유진크레베스는 제품 하나를 생산할 때마다 1원씩을 적립해 다양한 사회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어 베트남에서 ‘천사 기업’으로 통한다